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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재의식 속의 편견
  •  관리자
  • 날짜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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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월 미국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23살의 아프리카 출신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간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그 젊은이가 호주머니에 손을 갖다대는 순간 경찰관 4명은 41발을 난사해 19발을 명중시켰다. 그들은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그 흑인청년이 권총을 꺼내는 것 같아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하여 무죄로 풀려났다. 흑인청년이 호주머니에서 꺼내려고 한 것은 지갑이었지만 경찰관들은 총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관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런 오판을 하게 된 이유는 흑인을 위험한 존재로 여기는 편견이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사람들은 사회적 집단, 가령 흑인과 백인, 여자와 남자, 늙은이와 젊은이, 돈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 등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편견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하지만 잠재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른바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사회집단에 대한 암묵적 편견은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기 전에 머릿속에 형성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6년 하버드대 심리학자 마자린 바나지는 인종에 관한 암묵적 편견이 여섯 살까지 형성되어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백인 어린이들은 인종적으로 구분하기 힘든 성난 얼굴을 보면 백인보다는 흑인으로 판단하는 성향을 드러냈다.

일부 암묵적 편견은 뇌의 정서 기능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오하이오주립대 심리학자 윌리엄 커닝햄은 백인들에게 백인과 흑인의 얼굴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백인의 뇌 활동을 측정한 결과, 백인 얼굴보다 흑인 얼굴이 편도체의 활동을 더 자극했다고 보고했다. 편도체는 공포와 경계심을 일으키는 부위이다. 인종에 관한 암묵적 편견이 강한 사람일수록 편도체가 더 활발하게 반응했다.

이처럼 흑인 얼굴이 잠재의식 속에서 경계심을 유발하는 이유는 미국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스웨스턴대 심리학자 제니퍼 리체슨은 흑인 청년을 범죄나 폭력과 연결시키는 미국사회의 문화적 고정관념이 워낙 공고해서 뱀을 보면 위협을 느끼듯이 자동적으로 미국 백인의 뇌가 흑인을 위험한 존재로 판단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암묵적 편견은 정서 반응뿐만 아니라 사려 깊은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07년 미국 럿거스대 심리학자 로리 러드먼은 흑인에 대한 암묵적 편견을 강하게 드러내는 백인일수록 일상생활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흑인을 차별하는 성향을 강하게 표출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백인들은 흑인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거나 신체적으로 위해를 곧잘 가했다. 또한 암묵적 편견을 가진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일터에서 불이익을 안겨주기 일쑤였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인종 편견이 의료행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마자린 바나지의 연구에 따르면 병원 응급실 의사들이 흑인환자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진료에 최선을 다 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흑인에 대한 편견이 백인의 머릿속에 똬리를 튼 미국사회에서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선 후보가 끝내 뜻을 이룰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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