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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시토신-포옹의 호르몬
  •  관리자
  • 날짜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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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믿고 상대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초면인 사람과 이해관계가 얽힐 때는 혹시 속임수에 말려들지 않을까 싶어 전전긍긍하게 마련이다. 주변에 사기를 당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처음 보고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정확히 가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실험경제학자들은 신뢰게임(trust game)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고 말한다.

1990년대 중반에 미국 아이오와대 경제학자 조이스 버그가 고안한 신뢰게임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된다. 갑과 을은 가령 1000원씩 갖고 있다. 먼저 갑이 을에게 자신의 돈 일부를 건넨다. 만일 갑이 400원을 나눠주기로 결정하면, 게임의 규칙에 따라 그 금액의 3배인 1200원이 을에게 주어진다. 을의 돈은 2200원으로 불어난다. 을이 자신의 돈에서 임의의 액수를 갑에게 되돌려주면 게임은 종료된다. 갑과 을은 모르는 사이이므로 갑이 을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돈의 일부를 내어놓았을 리 만무하고, 을이 갑의 신뢰를 배반했다면 돈의 일부를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신뢰게임이라고 불린다. 실험경제학자들은 갑이 을에게 전달하는 금액으로 낯선 사람을 신뢰하는 정도를, 을이 갑에게 되돌려 주는 금액으로 신뢰 받을 만한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신뢰게임을 곧잘 실시하여 인간의 협력적 성향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 신경경제학자 폴 자크는 신뢰게임을 활용해서 옥시토신이 협력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포옹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은 여자가 출산과 수유를 할 때 분비될 뿐만 아니라 남녀가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 혈중 농도가 급상승하는 화학물질이다. 2005년 '네이처' 6월 2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자크는 신뢰게임을 실시한 뒤 참가자들의 혈액을 채취하여 옥시토신의 혈중농도를 조사한 결과 을이 갑의 신뢰를 많이 받을수록 뇌 안에서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됐으며, 갑에게 더 많은 금액을 되돌려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신뢰게임을 하는 동안 뇌 안에서 옥시토신 말고는 다른 호르몬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옥시토신은 신뢰의 행동을 일으키는 유일한 화학물질로 여겨진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베라 모헨은 낯선 사람들이 처음 만나서 악수나 포옹 같은 신체 접촉을 통해 협력 관계를 맺는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기 위해 신뢰게임을 활용했다. 모헨은 남녀 대학생 96명을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집단은 안마를 받았고 세 번째 집단은 안마를 받지 않았다. 신뢰게임에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집단이 참여했다. 게임 종료 직후 옥시토신 혈중농도를 비교한 결과 첫 번째 집단은 올라가고, 두 번째 집단은 변화가 없고, 세 번째 집단은 다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진화와 인간행동(Evolution and Human Behavior)' 온라인판 7월 1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모헨은 첫 번째 집단에서만 옥시토신의 혈중농도가 높아진 것은 안마와 같은 신체 접촉이 신뢰를 유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낯선 사람들끼리 몸을 접촉하면 상대에게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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